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장 발장이 실은 다이제스트 본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어 완역본을 다시 읽었다. 완역본은 딱 보기만해도 압도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었다. 한권이라해도 꽤 두꺼운 책이 무려 5권이나 된다니.. 대체 "장 발장" 이야기를 어떻게 쓰면 그런 분량이 되는지 의아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 시절의 불행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을 보았을때의 감정이입은 스토리만으로 전달되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소설의 배경이 한국도 아닌 프랑스, 게다가 시대도 한참 과거라서 소설 속 이야기는 말 그대로 소설로만 읽혀지기 쉽지만, 레 미제라블은 달랐다. 그 엄청난 분량은 그 모든 전후 상황(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말그대로 모든 상황)을 독자인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었고, 그 준비 과정은 나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모든 준비를 갖추도록 해주었다.
어떤 때는 좀 과하다는 느낌마저 있어서 그 모든 주변 정황들의 설명들을 보고 있자면, 정작 등장인물들의 일들은 그 사회 전체에 비하면 (사실이 그렇지만) 정말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들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준비들로 인해서 더 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어본 소설이었다. 이야기에서 몇군데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적어본다.
"잊지 마시오. 결코 잊지 마시오.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고 내게 약손한 일을."
꿈에도 약속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주교는 그 말을 할 때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 이름을 감출 것, 그리고 영혼을 성화할 것이라는 두 개의 관념을. 이제야 비로소 그에게는 그 두 가지 관념이 전혀 판이한 것으로 보이고, 그 둘 사이의 차이가 보였다. 그는 깨달았다. 이 관념들 중 하나는 당연히 선하나 다른 하나의 관념은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하나는 헌신이나 다른 하나는 개인 중심이라는 것을. 하나는 '이웃 사람'을 말하나 다른 하나는 '자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는 광명에서 오지만 다른 하나는 암흑에서 온다는 것을.
... 그는 자기 일생의 두 위기에서 자기를 연이어 맞아들여 준 것은 천주의 두 집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집은 모든 문들이 닫히고 인간 사회로부터 배척당했을 때였고, 두 번째 집은 인간 사회가 다시 뒤쫓기 시작하고 형무소가 다시 입을 벌렸을 때였는데, 첫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범죄에 빠졌을 것이고, 두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형벌에 빠졌을 것이다.
수녀원은 코제트처럼, 장 발장 속에서 미리엘 주교의 사업을 유지하고 완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덕의 여러 몇 중 한 면은 교만에 이르는 것이 확실하다. 거기에 악마가 놓은 다리가 있다. 장 발장은 아마 부지불식간에 그 면에, 그리고 그 다리에 꽤 가까이 있었을 것인데, 그때 하늘의 뜻은 그를 프티 픽퓌스 수녀원에 던졌다. 자기를 주교하고만 비교했던 동안에는 그는 자기가 비천하다고 느꼈고 그는 겸손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그는 자기를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교만이 싹텄다.
... 증오, 절망적인 악의, 인간 사회에 대한 분노의 절규, 하늘에 대한 빈정거림.
후자에서 무엇이 나왔던가? 축복과 사랑.
그리고 그토록 비슷하면서도 그토록 사뭇다른 그 두 장소에서 그토록 판이한 그 두 종류의 인간들이 똑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즉 속죄를.
장 발장은 한쪽 사람들의 속죄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속죄, 자기 자신을 위한 속죄는. 그러나 또 한쪽 사람들의 속죄는, 그 허물 없고 순결한 여자들의 속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전율을 느끼면서 자문했다. '무엇을 속죄하는 것일까? 무슨 속죄일까?'
하나의 목소리가 그의 양심 속에서 대답했다. '인간의 너그러움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것, 즉 남을 위한 속죄다.'
인간은 단 하나의 중심을 갖고 있는 원이 아니라, 두 개의 초점을 갖고 있는 타원이다. 사실이 하나의 초점이고, 사상이 또 하나의 초점이다.
... 그는 이 사람 속에 '신적인 것'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무엇을 해도, 어떤 정상참작을 찾아도, 언제나 꼭 이런 것으로 되돌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그는 죄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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